안녕하세요.

by 사인영 posted Mar 28, 2008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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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03년, 여러분들과 같은 입장에 있었던 날이 엊그제 같습니다. 전 날 과도하게 술이라도 마신 날이면, 이미 열 시가 넘어 있는 휴대폰 시계를 원망하며 부랴부랴 공학 1동을 향해 달려가던 날들도 기억이 나네요. 숙제가 있는 지 조차도 까먹고 있다가, 수업시간에 수업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친구 숙제를 참고(카피는 아니었다고 해 둡시다)하고, 친절하게도 스테이플러를 챙겨 다니는 친구에게 늘 고마워하며 찍어내던 나날의 연속이었죠. 더구나 전, 동아리 연습이 하나는 월요일, 다른 하나는 수요일이어서 화목 아침 수업은 정말이지 힘들었답니다. 맨 정신일 때는 '아 교수님 목소리 참 좋으시구나~' 하면서 감상하고, 제정신이 아닐 땐 '아 교수님 목소리 참 나긋나긋 하시구나~'하며 눈이 스르르 감기던, 그냥 (대다수의) 여러분들이 그렇듯, 2학년 학부생이었지요.

시간이 참 빨리 갑니다. 일주일에 두 세번씩 있던 지옥같은 퀴즈를 보던 1학년도 지나가고, 숙제하고 공부하고 사람 만나고 정신없이 바쁘던 2학년도 지나가고, 동아리활동을 전공 삼아 살았던 3학년도 지나가고, 그리고 언제 있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 4학년도 지나가고.. 이젠 '나이들고 칙칙한 원생ㅠㅠ'이 되어버렸군요. 한 때는 나도 저렇게 동기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며 공부도 하고, 밥(or 술)도 먹던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죠.

사설이 길었네요, 여튼 첫 번째 숙제 채점을 완료했습니다.

일단,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. 이 어려운 과목의 숙제를 해내고 있는 후배님들이 정말 대단합니다. 전 학부에서의 소재열역학 1, 2, 대학원 열역학을 듣고도 아직 잘 모르겠어서 열역학을 또 다시 청강하고 있는데, 아직도 누군가가 '엔탈피가 뭐냐?'라고 물어보면 딴 청을 부릴 것 같군요.

채점 방식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드릴게요. 세 명의 조교가 나누어서 채점을 했습니다. 2.1번은 김현규 조교님, 2.3번은 강경한 조교님, 그리고 2.5와 2.7번은 제가 채점했습니다. 각 문제별 채점 기준은 다릅니다. 조교들 각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, 두 문제를 같은 방식으로 풀었어도, 한 문제에선 만점이 나오는 데 다른 한 문제에선 감점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. 하지만 꼼꼼하고 성실하게 푼 사람이, 필요한 것만(혹은 필요한 것도 가끔 빼먹고) 적어낸 사람보다 좋은 점수를 받았을 거라는 점은 확실합니다.

이번 숙제는 되도록이면 틀리거나 감점된 요인에 대해 항상 comment를 달아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. 숙제를 풀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, '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'를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. 앞으로의 숙제에도 항상 이렇게 시간을 많이 들여 채점을 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, 되도록이면 친절한 조교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. :)

첫 숙제 점수를 받아들고 '생각보다 잘 나왔군'이라고 안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, '채점을 너무 짜게 하는군'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. 우연히 잘 푼 친구의 숙제를 베껴서 점수가 잘 나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,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서 풀었는데 점수가 안 나와서 마음이 상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. 하지만, 유명한 말이 있죠. 'There is no free lunch'라고... 숙제 한 번 점수 잘 나오고 안 나오고가 중요한 게 아니랍니다. 자신이 열역학에 기울이는 노력들이, 결국은 중간고사/기말고사 뿐만 아니라, 앞으로 전공 수업에서 듣게 될 수 많은 과목들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칠 거라는 데 대학원 한 달 월급을 걸죠. (지금도 다른 전공 과목을 들으면서 '깁스 프리 에너지가 낮아 지면 안정한 거라서 그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난다'는 얘기를 벌써 열 번은 넘게 들었으리라 예상됩니다.)

수업을 듣는 것만으로 그치지 말고, 스스로 의미를 느끼기까지 고민을 많이 하세요. 장담하건대, 훌륭한 전공 성적으로 보답이 돌아올 겁니다. 다들 건투를 빌어요!

P.S. 카피는 눈에 보인답니다 =) 제가 학부생일 땐 안 보일 줄 알았는데 말이죠.. ㅎㅎ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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